전염병으로 드러나는 한 사회의 이면 – 아틀란틱

– 페스트를 언급한 부분이 맘에 들어서. 정치색 감안해야 할 듯.
– 나름 존스 홉킨스 민주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인데 과연 이 글의 정치적 해석이 추후 맞아떨어질지?!

이탈리아 볼로냐 – 나는 지금 이탈리아 북부 도시 한가운데 앉아있다. 봉쇄된 롬바르디아 시내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이 순간, 볼로냐에서는 신종 코로나 확진 사례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COVID-19로 알려진 이 병에 걸린 한 두 명은 타지역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내 주변 아무도, 가까운 그 어느 누구도 아픈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초빙강사로 온 여기 미국 대학에서는 별 얘기가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치료약이 없는데 급속히 확산하는 병과 싸워본 사람은 우리 중에 거의 없다. 스페인 독감을 떠올릴 만큼 많은 나이도 아니다. 사람들은 백신이나 임상실험을 통과한 약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방송, 표지판, 이메일에서는 손을 씻으라는, 그다지 충분하지도, 안심 되지도 않는 권고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기관인 볼로냐 대학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축구경기와 컨퍼런스 회의도 취소됐다. 안내를 따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여러 번 역병을 겪어본 중세의 거리–1348년 흑사병으로 도시 인구의 반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상하리만치 텅 비었다. 동료 중 반은 이런 조치가 지나치게 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반은 조치가 충분치 않다고 불안해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질병의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일부 이유가 있다. “역병이란 인간의 체계를 갖추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실감이 안 난다고, 언젠간 끝날 악몽이라고 서로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또한 지금 상황에도 꽤 잘 부합한다. 많은 이들이 눈에 안 보이는 무엇 때문에 일정까지 바꾸려 들지 않는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일종의 풍자로, 사실은 프랑스의 점령이나 인간 조건을 다룬 책으로 종종 읽힌다. 하지만 전염병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에도 아주 좋은 책이다. 책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온갖 인간 행동이 열거되어 있다.

<페스트>의 내용 중, 봉쇄된 도시에서는 “여행일정을 잡거나 의견을 주장하는 등 일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래를 부정하고 여행과 토론도 못하게 만드는 전염병을 왜 굳이 생각해야 하는가?”가 있다. 이 대목의 현대 밀라노 판인 #Milanononsiferma—“밀라노는 멈추지 않는다”—해시태그 캠페인이 이미 시작됐다. 나머지 도시도 뒤따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정부 대책을 불필요한 권고라고 일축하는 이탈리아 업체 사장과 호텔 매니저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하지만 비가시성은 불확실성을 낳고, 불확실성은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무도 쉽게 악용된다. 예를 들어 <페스트>의 등장인물 중엔 전염병을 기회로 신도 수를 늘리려는 신부가 있다. 그는 전염병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는 신의 벌이라고 신도들에게 설교한다. 현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생한 불안감을 제일 먼저 악용하는 사람은 극우파 수장 마테오 살비니이다. 그는 정부의 즉각적인 국경 봉쇄, 모든 집회의 중단, 시민들은 집에 머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살비니는 쓸데없이 문제를 키웠다. 그의 주장이 없었다면 즉각적인 반발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에 처음 나타났는데 그 지역은 북부 연맹의 세력이 제일 강한 곳이었다. 국경 봉쇄가 그 지역 경제를 최악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살비니는 다른 쪽으로 말을 바꿨다. 그는 정부가 아프리카 난민으로부터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난민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외지인, 불결함, 질병을 하나로 뭉뚱그려 보는 인식은 매우 오래됐다. 프랑스 극우파 수장 마린 르 펜 또한 프랑스 정부에 프랑스-이탈리아 간 국경 봉쇄를 요청했는데 이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 프랑스의 초기 감염 사례들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며칠 뒤 런던에 가야해서 영국 우파 타블로이드지를 꼼꼼히 읽으며 히스테리 정도를 살피고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잠잠했기에 — 보리스 존슨 총리와 임신한 여자친구의 약혼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항공편은 계속 있을 것이다. 보수 언론들이 일단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이탈리아와의 일체의 접촉 차단을 주장할 것임이 분명하며 보수 언론의 입장을 중시하는 영국 정부는 이를 신중히 참고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악하다는 건 아니다. 소설에 흔히 나오는 영웅과는 다르지만, 카뮈의 소설에서도 영웅은 있다. 그들은 의사, 의사를 돕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기록하고 측정하고 일어난 일을 추적하면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공무원인 그랑 씨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음 속 선한 마음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높은 이상을 가진 것 외에는 딱히 추천할 점이 없는, 이 소박하고 겸손한 영웅. 이 사람이야말로 정확한 진실, 즉 2 더하기 2는 4와 같은 진실을 건네줄 것이다.” 그랑과 의사 리우, 여타 몇 명의 무리는 과학, 투명성, 정확성을 토대로 질병을 파악하고 억제하기 위해, 히스테리나 좌절감 조장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좀 괴상한 생각이긴 하지만 역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똑같이 영웅이다. 과학자나 공중보건 연구원들은 즉시 수치와 사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즉시 백신 연구에 착수했다. 중국 우한에서처럼 봉쇄 지역에 잔류하기로 결단을 내린 이탈리아 간호사와 의사들도 많다. 그들의 판단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과 전염병 확산의 둔화라는 1차 목표를 함께 고려해야 되는 이 상황에서 격리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사안의 정오를 명확히 판가름하는 방법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질병의 악영향에 대한 예상치를 다르게 낸 바이러스 전문가들 사이에 공개 논쟁이 오가곤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닥칠 몇 주간의 요령을 알려주겠다. 정치인을 판단할 때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명확히 결정권을 쥐어 주는지를 볼 것. 사람들이 바라는 건 정확한 정보이지 정치색에 물든 정보가 아니다. 그리고 많을수록 좋다. 4년 간 이어진 청문회 끝에 영국 정치인의 입에서 “이제 전문가들은 충분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때 비로소 전문가의 가치가 뚜렷해진다. 사실관계가 갑자기 중요해지는 것이다.

재난과 마찬가지로, 전염병도 사회 이면의 실상을 드러내준다. 중국은 비밀주의 체제, 명령하달식의 관료적 문화로 인해 초반에 질병을 감추는 바람에 벌써 큰 대가를 치렀다. 대조적으로 이탈리아가 살비니와 그의 왜곡된 정보 선동에도 불안이 더 높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의료체계 및 이를 둘러싼 더 큰 범주의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수천 명을 대상으로 바이러스를 검사했는데(물론 검사비는 무료다) 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수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사람들도 이를 알고 서로 거듭 말한다. 가끔은 농담하기도 하지만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참 속일 줄을 몰라”) 이는 긍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검사를 시행한 나라는 유럽에 아직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국은 이 비슷한 대처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미국 의료체계, 나아가 미국 사회체제가 신뢰 구축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두렵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최신 의료 기술 체계, 최고의 의사와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신뢰감을 주는 공중보건 문화 같은 것은 없다. 병원은 이미 더 내려갈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예산을 삭감했다. 여유분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격리 당하면 이들은 도망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미국 정부는 음모론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를 ‘사기’라고 말했고 미신적 믿음을 여러가지로 보여줬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사라질 겁니다. 언젠가는—마치 기적처럼—없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계속 나빠지다가도 언젠간 좋아지잖아요”,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만약 사람들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그 기만과 미신적 사고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는 사망자 수, 질병의 확산, 격리와 권고를 무시한 사람들의 숫자로 측정될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전염병은 아니지만, 지금의 신종코로나 대응도 추후 일종의 시범훈련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기에, 지금 상황에서 이런저런 면을 배우게 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요즘 산불이 치명적인 이유는 원래 산불이 나던 지역에 사람들이 더 가깝게, 더 많이 살게 됐기 때문이다. 많은 신종 질병들은 인류의 거주지가 지구 방방곡곡 확장된 결과다. 사스, 에볼라, 코로나 19는 동물 영역에서 인간 영역으로 넘어온 질병이며 기차, 자동차, 비행기, 공공장소의 인구 밀집을 통해 빠르게 퍼진다.

데이비드 콰먼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Spillover)>에서 이렇게 썼다. 이 질병들은 “다윈의 오랜 진리(그의 말한 진리 중 가장 어둡고, 잘 알려져 있지만, 끊임없이 잊혀지는)를 떠올리게 한다. 인류는 동물의 일종으로 종의 기원에서 혈통, 질병과 건강 면에서 다른 동물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 이런 바이러스들이 사그라들고 눈앞에 안보인다 해도 굳이 없어질 필요까지는 없다. 사라진 바이러스들은 돌연변이를 통해 다른 동물에 둥지를 틀고 재창궐할 것이다.

이 또한 카뮈의 <페스트>에서 리우 의사가 예측한 바다. 리우 의사는 “이 전염병 박테리아는 결고 죽지도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을 것인데, 가구 또는 면으로 된 보석함에 몇 년이고 동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침실, 지하실, 가방, 책장 선반에서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인간이 골칫거리로 삼든 계몽의 기회로 삼든, 박테리아는 쥐떼를 불러일으켜 행복이 가득한 도시로 돌격해 죽어버리게 만들 것이다.

이번엔 운이 좋을 수 있겠지만, 이 기회를 통해 의학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비를 해야 한다. 다음에 올 역병, 또 그 다음에 올 역병을 위해.

[무인시대] 무인시대 감상문 서문

요즘에 KBS 에서 방영했던 무인시대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사극계에서 왕건, 야인시대 만큼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나의 주관적 생각으론 무인시대를 왕좌의 게임 고려 에디션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니 =3= 정말이지 이건 한국 사극 역사에 있어 대단한 걸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무인시대는 지금 유튜브 KBS 공식 채널에 업로드 되어 있다 (유료지만).

그래서 오늘부터 시리즈 물로, 무인시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비평하는 글을 쓸텐데.. 먼저 이 드라마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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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대의 주인공”들”은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주인공이 죽는다2. 주인공이 성격에 약점이 있다.

무인시대는 1170년, 무신(武臣)의 차별 대우에 분노하여 무신들이 문신들을 주살한 무신정변부터 1219년 최충헌의 죽음까지를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무인 집권자들이 역사적으로 몇번 (죽음으로) 바뀌었고, 드라마도 이런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므로 주인공들이 몇번 바뀝니다. 한국 사극에서 주인공이 (그것도 비참하게) 죽고, 주인공을 죽인 사람이 새로운 주인공이 되는 서사는 굉장히 희소하니 가히 고려판 왕좌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단 말씀 =3=

가령 초반에는 이의방이 정권을 잡아 주인공 대접을 받지만 51화 즈음에 정균에게 암살되고. 그 다음에는 정중부와 정균 부자(父子)가 극을 이끈다. 그러다가 이 정씨 부자도 경대승에게 참살되고, 경대승이 주인공이 되는.. 이런 식으로 최충헌까지 간다.

각 주인공들은, 최수종으로 대표되는 초인이 아니라 각자 성격에 흠결이 있고 결국 그 흠결을 극복하지 못해 파멸하는데. 가령 이의방은 너무 폭력적이었고, 경대승은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여 실패한다. 때로는 주인공들이 가진 장점조차 파멸의 원인이 되는데 이의방의 호탕한 성정으로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이의방을 배신하는 식이다.

이렇게 기존 한국 사극에선 보기 힘든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 보는 내 입장에선 이게 보통 드라마가 아니라, 정도전이나 명랑 이상의 명작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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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인시대, 이 드라마를 아직 감상하지 않음 사람들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한번 내가 최선을 다하여 글을 쓸 요량입니다만. 더도말고 덜도말고 저는 이 시리즈의 애독자가 딱 한명이면 족합니다. 매 글을 쓸 때마다 덧글이 딱 하나만 달려도 만족한다, 이 말씀 ㅋㅋ 완전 마이너한, 이제는 잊혀진 명작을 비평하니. 부디 시리즈 완결까지 잘 완성할 수 있기를 =3=출처:[무인시대] 무인시대 감상문 서문

정말 재밌었던 추억인데 막상 얘기로 꺼내면 지루하다 – 사이컬러지 투데이

2017년 5월 17일 Gus Cooney 
TV 시트콤 <빅뱅이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중 하나인 하워드가 국제우주정거장에 가서 NASA 우주비행사들하고 놀고 무중력도 경험하고 대우주에 대해 사색하다 돌아온다. 친구들은 그동안 지구에 그냥 있었다. 이 특이한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고픈  하워드가 집으로 오면서 얼마나 들떠있었을까. 
집에 와보니 친구들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파이 먹기 대회를 하고 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하워드가 외친다. “나 우주 갔다 왔다!”
친구들은 고개를 들어 흘끗 보더니 일제히 다시 고개를 파이에 처박고 먹기 시작한다.
이후 시간 동안 하워드는 친구들에게 우주정거장 이야기를 해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태양표면 얘기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평범한 지구별 주제를 더 재미있어 한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하워드 이야기였지만 우리 모두 하워드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도 종종 신박한 이야기에 듣는 사람이 감탄하기를 바란다. 지루한 눈빛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공통 주제로 화제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음은 우리가 <사이컬러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가설이다. 
우리는 학부생들에게 4명 1조로 연구실을 방문해달라고 했다. 간단한 실험이었다. 참여자들은 영상을 보고 난 뒤 5분간 대화를 나눈다. 단, 4명 중 3명을 무작위 선정해서 이 3명은 “평범한” 영상(저예산 단편 애니메이션 등)을 보고, 남은 1명은 “신기한” 영상(조회 수 급증한 기막힌 마술 영상 등)을 본다. 대화를 나누기 전 참여자들이 예상한 바가 핵심이다. 만일 평범한 또는 신기한 영상을 보고난 후 대화를 나눈다면 어느 쪽 사람이 더 즐거울까? 그 뒤 참가자들의 예상을 실제 설문 결과와 비교했다. 당연하게도 참여자들은 신기한 영상을 보고 났을 때가 대화할 때 더 즐거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기한 영상을 본 참가자들이 관람 후 이어진 대화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덜’ 즐거웠다. 소외감 때문이었다. 
특별한 경험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언뜻 모순같다. 벨루가 캐비어에 빈티지 샴페인이 근사한 것이 아니면 도대체 뭔가? 정확히 말하면 경험은 멋지다. 단, 특별한 경험은 “그 순간에” 멋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그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근사하지 않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특별한 경험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고, 따라서 함께 어울리기 어려워지고, 그렇기에 행복감은 줄어든다.
왜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할까?
시기심일 수도 있다. 열대 섬 투어를 해본 적이 없는 내 앞에서 누가 정말 환상적이라고 말한다면 조금 씁쓸할 것이다. 하지만 시기심뿐이라면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타인의 신기한 경험이 진심으로 궁금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신기한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려고” 애쓸 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최근 한 카페에 갔을 때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한 중년 남자가(외모가 해적 비슷) 최근 휴가를 갔다와서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카탄 반도에 가셨어요?” 여자가 물었다. “정말 대박이었어요.” 남자가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대며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동굴 다이빙도 갔었어요. 엄청 깜깜하더라구요.” “힘들었겠어요.” 이 순간 해적아저씨는 상대에게 동굴 다이빙을 좀 더 잘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됐다. “일단 동굴 지형에 들어가면요, 그 세노떼에서요, 부력 때문에 지층을 훼손하지 않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여자 얼굴에 잠시 아리송한 표정이 스쳤다. 몇 분이 지나며 여자의 호기심은 지루함으로 변했고,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만이 정신을 붙들어 매주었다. 이 짧은 일화를 통해 사람들이 대화할 때 불충분한 설명과 과도한 설명이라는 양쪽의 함정을  얼마나 쉽게 번갈아 빠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나의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상대는 경험이 없어 잘 못 알아듣기 때문에 대화의 난이도가 증폭된다.
그렇다고 특별한 경험을 피하거나 말하기를 삼갈 필요까지는 없다. 핵심은 그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안전장치 없이 기계를 가동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대화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상대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소재를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치러야 할 대가는 막대하다. 대화를 하나씩 분류해보기 시작하면(또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기 시작하면) 일상을 주제로 할 때 대화가 놀라울 만큼 생생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귀한 경험에 바탕한 대화는 짧게 마무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외계에서의 셀카로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는 쌓을 수 있지만 대화 주제로는 형편없다. 실수는 특별한 경험을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마치 몰디브의 따스한 바닷물처럼, 특별한 경험이 오면 거기 서서 흠뻑 적신 뒤 지나가게 두는 것으로 족하다. 그에 비해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까다로운 일이며, 실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말이 나오기도 한다. 대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나와 상대의 공통분모에서 꽃을 피운다.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순간, 혼자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후연, 황충

하후연

하후연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190년에 조조가 군(軍)을 일으키자 별부사마, 기도위로서 본격적인 장수의 길을 걷습니다만 – 별부사마는 독립된 부대의 대장이고, 기도위는 기병군의 대장이니. 219년에 정군산에서 죽을 때까지 하후연은 장장 20년 가까이를 군문(軍門)에서 보낸 베테랑이었다. 위나라의 각 장군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기가 있는데 장합은 포진(布陣), 하후돈은 점령지 행정, 우금과 악진 등이 선봉장의 역할을 맡았다면 하후연의 특기는 단연 기동전이었다.
정사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후연이 크게 활약한 전투 대부분은 야전이나 회전(會戰)이었다. 하후연의 주요 활동 무대는 광활한 평야지대가 펼쳐진 화북과 서북 일대였으며, 하후연은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강행 작전을 잘 구사했다. 이게 잘못하면, 하후연이 무식해서 그냥 무조건 닥돌했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 한두번도 아니고 20년 세월을 이 전법으로 꾸준히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건 단순한 요행이나 용맹에 의지하여 이룬 업적이 아닌 것 같다. 전한(前漢)의 명장 곽거병도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강행 작전을 잘 구사하여 흉노 토벌이란 큰 업적을 이루지 않았나.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적진 한복판에 강행 작전을 구사하고,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리스크를 모조리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은 철저하게 장군의 역량 문제다. 하후연은 이런 무리수를 20년 가까이 거의 대부분 무탈하게 잘 구사했고, 그럼 장군으로서 능력을 의심할 것 없다. 괜히 조조가 하후연을 공자의 최애제자, 안회에 견주었겠는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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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이 량주에서 한수와 싸울 때, 이미 천리를 행군하여 많은 전투를 치뤘고 한수의 병력이 더 많아 제장들은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는, 방어적인 운영을 제언했다. 그러나 하후연은 혼자 “천리를 이어 싸워 병졸들이 지쳐있어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면 더 지친다. 적이 병력은 많지만 만만하다, 공격하자” 라고 결정했고. 진짜로 한수의 부대를 격파한다. 평범한 장군이었다면 병법의 원칙에 따라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 병사들을 쉬게 하지 함부로 자기보다 더 많은 적군을 향해 무작정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후연은 했다 — 이건 하후연이 용맹해서 (혹은 무식해서)가 아니라, 아군과 적의 전력 차이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노련한 통찰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리를 전투로 행군한 자신의 부대와 자기보다 수는 더 많지만 능력은 부족한 한수의 부대를 두고, 하후연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 계산했고 그 계산이 맞았다. 이것만 봐도, 하후연은 지모가 없는 필부는 절대 아니었다는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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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후연이 20년 군단장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야전에서 패한 드문 경험이 몇번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맹기(마초)에 의한 패배였고, 이때 하후연은 군(軍)의 형세가 불리하여 퇴각하는 치욕을 겪는다. 마초는 조조도 거의 잡았을 정도로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맹장이었고, 하후연은 마초에게 패했으니 — 하후연이 중국에서 야전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는 말씀 =3= 공교롭게도, 마초는 이후 유비에게 투항하여 한중전에도 참전하는데.. 한중전은 마초와 비견되는 전투력을 가진 장비, 위연, 그리고 황충도 함께 참전한 상태였다. 이들은 하후연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오랜 세월을 전투로 보낸 베테랑, 유비의 지휘를 받고 있었고. 유비의 부족한 지모는 법효직(법정)이 보충하는 형태였다.

즉, 하후연은 한중전에서 지금하곤 레벨이 다른 적을 만났다고 봐야지 않나. 뇌서, 한수, 황건적 같은 무리들도 물론 마냥 호구는 아니었으나, 장비나 마초 같은 장군들도 용맹하기로는 적수가 없었거든. 장비는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아냈고, 마초는 조조를 죽음 직전까지 공격했다. 물론 하후연도 혼자서 유비의 대군과 붙은 것이 아니라 장합, 조휴, 조홍, 곽회 같은 명장들과 함께 붙었으며 이들도 상당한 전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하후연을 죽인 사람은 장비도, 마초도 아닌 황충이라는.. 사실 북방에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의 장군이었다.

황충
정사 삼국지에서 촉나라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부족하지만 황충은 그 정도가 심하다. 정사 삼국지는 서진(西晉) 초에 완성됐는데 훗날 남송(南宋)의 학자 배송지가 다양한 문헌을 주석에 추가하여 조운 등 — 기존에는 부실했던 기록들이 상당히 보완됐는데 황충은 배송지의 주석도 없다. 진짜 어지간히도 조용한 삶을 사셨던 모양 =3= 그러나 이런 부족한 기록들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황충의 상관들은 모두 황충이 용맹한 인물이었음은 인정했다.

유표는 황충을 장사에 배치하고 중랑장에 임명하는데 – 중랑장은 장비가 조조에게서 받은 장군직이었고 당시 장사는 유표의 조카 유반이 수비하고 있었는데. 유반은 강동으로 세력 확장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강동에 지역 기반을 둔 손씨는 이런 유반에 대응하고자 태사자를 배치했고. 적과 근접한 국경에 황충을 배치한걸 보면 문사(文士)에 지나지 않았던 유표도 황충의 전투력을 인정한 모양이다. 이후 형주가 조조에게 넘어가자 조조는 황충을 임시 비장군에 임명하는데, 비장군은 요즘으로 치면 소대장으로 적과 직접 격돌하는 역할을 맡는 장군들이 주로 맡았다.

그리고 유비는 황충의 전투력을 유표, 조조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유비가 서촉을 공격할 적에, 처음에는 일부로 관우, 장비, 조운, 제갈공명 등 1군의 제장들은 형주에 두고 비교적 명망이 적은 장군들로 공격진을 구성했다. 그러니 이들은 명망만 적었지 능력 자체는 진짜였는데 여기에 위연과 황충이 배속된다. 황충은 파촉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큰 군공을 세우고 용맹함과 굳셈이 삼군의 으뜸이었다고 하는데.. (비록 후발대였지만) 장비, 조운보다 더 큰 무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황충의 열전은 관우, 장비, 마초, 조운과 함께 묶였는데 조운보다 먼저 소개된다. 비록 조운이 황충보다 더 오랫동안 유비를 섬겼고 황충보다 더 오래 살았어도 무공이나 업적의 측면에서 황충이 조운보다 더 위였다는 뜻이다. 시호도 조운보다 먼저 받았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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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군산 전투로 돌아가서 — 장합의 군대가 유비의 공격에 위태롭자 묘재(하후연)은 자신의 부대를 반이나 분할하여 장합에게 지원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황충이 하후연에게 돌격하면서, 황충의 부대에 배속된 병졸에게 하후연이 참살된 것 같다. 그런데 하후연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군단장이었는데. 적병의 규모나 적장이 누구였는지를 몰랐겠어? 추측하면, 하후연은 자신의 전투력으로는 부대원이 반으로 줄어도 자신이 패하지 않을 거라 여기지 않았을까. 쉽게 말해서, 황충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았다는 말씀 =3=

북방에서 하후연은 관우, 장비, 여포, 공손찬, 마초 등의 맹장들의 활약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20년간 군(軍)을 이끌었으니. 계산에 의하면 황충은 (혹은 유비 휘하의 제장 누구든)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정사 삼국지에선 마초 다음으로 황충을 인정하니, 하후연은 마초를 상대로는 졌으나 그 아래 레벨의 장군을 상대로는 (병력의 반이 줄어도) 이길 수 있으리라 오판했고 결국 패사(敗死)했다.

명망이나 공적을 기준으로, 하후연이 황충을 경계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객관적으로 서로의 경력을 비교하면 누가 봐도 하후연이 황충보다 우위였다. 관우조차도 황충은 노병(老兵)이라 북방에서 활약한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대차게 비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까보니 황충의 전투력은 하후연을 잡기에 충분했다. 명망과 공훈이 그 사람의 실질적인 능력과 완벽하게 매치가 되지 않을수도 있음을 하후연은 경계하지 않았다. 조조가 평소 하후연에게 “때로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라고 했던 조언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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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이 죽자 조조는 하후연을 민후(愍侯)로 추증하고, 하후연의 식읍은 토탈 800호에 그친다. 정욱과 가후의 식읍이 800호였으니 대단한 대접을 받은 것 같으나 — 하후연과 동시대에 활약한 종친 장군들 중 조인이 3500호. 하후돈이 2500호. 조홍이 2100호. 하후상이 1900호를 받았다. 유비도 하후연이 죽자 “대장(조조)를 잡아야지 이건 쓸모가 없다” 라고 혹평했을 정도로.. 하후연이 죽자 위, 촉 모두 “원래 그 친구 별 거 아니었다” 라는 식으로 폄하했다. 아마도 조조는 군(軍)의 사기를 지키고자 (하후연의 명예까지 깎아가면서) 정신승리를 시전했고, 유비도 비슷한 목적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으리라.

그러나, 하후연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진 이후 사서에도 나오는데 — 하후연이 사망했을 적에, 정서장군이었는데 위나라가 망할 때까지 정서장군은 공석이었다. 보통 어떤 신하가 큰 공을 세우면, 그 신하의 명예를 기리고자 그 자리를 비워두는데 (한나라의 상국, 촉나라의 승상도 각기 소하와 제갈공명이 죽자 공석으로 비웠다) 위나라는 하후연의 빈 자리를 그대로 둔 것이다. 하후패가 촉나라로 투항하자 위나라 조정은 하후연의 공적을 봐서 본국에 남은 하후씨를 처벌하지 않았다.

황충은 정군산에서의 활약으로 정서장군에 임명되어, 유비가 한중왕에 취임하자 후장군이 되는데. 이로서 황충은 관우, 장비, 마초, 조운과 동급의 반열에 오른다. 하후연 참살 한방에 관우, 장비와 같은 레벨이 된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황충이 하후연을 참살하지 못했다면 – 어쩌면 정사 삼국지 황충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황충도 끽해야 요화, 진도 정도의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그만큼 하후연은 대단했고 황충도 대단했다.출처:하후연, 황충

위선(僞善)

위선(僞善)에 관한 정의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여기서는 도덕적 위선이 아닌

사회(정치)적 위선의 개인적 견해와 기준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실력의 문제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에 강요] 한 후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 것이 위선이다.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돕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다.

약자를 도우라고 강요하고 자신은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위선이다.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모범이 없는 부모와 교사.

군기 빠졌다고 욕하면서 자신은 열외하는 군대 선임병.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면서 자신은 뒤로 빠지는 회사 상사.

가장 나쁜놈은 애국심 들먹이며 사욕을 채우는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