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연, 황충

하후연

하후연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190년에 조조가 군(軍)을 일으키자 별부사마, 기도위로서 본격적인 장수의 길을 걷습니다만 – 별부사마는 독립된 부대의 대장이고, 기도위는 기병군의 대장이니. 219년에 정군산에서 죽을 때까지 하후연은 장장 20년 가까이를 군문(軍門)에서 보낸 베테랑이었다. 위나라의 각 장군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기가 있는데 장합은 포진(布陣), 하후돈은 점령지 행정, 우금과 악진 등이 선봉장의 역할을 맡았다면 하후연의 특기는 단연 기동전이었다.
정사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후연이 크게 활약한 전투 대부분은 야전이나 회전(會戰)이었다. 하후연의 주요 활동 무대는 광활한 평야지대가 펼쳐진 화북과 서북 일대였으며, 하후연은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강행 작전을 잘 구사했다. 이게 잘못하면, 하후연이 무식해서 그냥 무조건 닥돌했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 한두번도 아니고 20년 세월을 이 전법으로 꾸준히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건 단순한 요행이나 용맹에 의지하여 이룬 업적이 아닌 것 같다. 전한(前漢)의 명장 곽거병도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강행 작전을 잘 구사하여 흉노 토벌이란 큰 업적을 이루지 않았나.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적진 한복판에 강행 작전을 구사하고,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리스크를 모조리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은 철저하게 장군의 역량 문제다. 하후연은 이런 무리수를 20년 가까이 거의 대부분 무탈하게 잘 구사했고, 그럼 장군으로서 능력을 의심할 것 없다. 괜히 조조가 하후연을 공자의 최애제자, 안회에 견주었겠는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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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이 량주에서 한수와 싸울 때, 이미 천리를 행군하여 많은 전투를 치뤘고 한수의 병력이 더 많아 제장들은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는, 방어적인 운영을 제언했다. 그러나 하후연은 혼자 “천리를 이어 싸워 병졸들이 지쳐있어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면 더 지친다. 적이 병력은 많지만 만만하다, 공격하자” 라고 결정했고. 진짜로 한수의 부대를 격파한다. 평범한 장군이었다면 병법의 원칙에 따라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파 병사들을 쉬게 하지 함부로 자기보다 더 많은 적군을 향해 무작정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후연은 했다 — 이건 하후연이 용맹해서 (혹은 무식해서)가 아니라, 아군과 적의 전력 차이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노련한 통찰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리를 전투로 행군한 자신의 부대와 자기보다 수는 더 많지만 능력은 부족한 한수의 부대를 두고, 하후연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 계산했고 그 계산이 맞았다. 이것만 봐도, 하후연은 지모가 없는 필부는 절대 아니었다는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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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후연이 20년 군단장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야전에서 패한 드문 경험이 몇번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맹기(마초)에 의한 패배였고, 이때 하후연은 군(軍)의 형세가 불리하여 퇴각하는 치욕을 겪는다. 마초는 조조도 거의 잡았을 정도로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맹장이었고, 하후연은 마초에게 패했으니 — 하후연이 중국에서 야전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는 말씀 =3= 공교롭게도, 마초는 이후 유비에게 투항하여 한중전에도 참전하는데.. 한중전은 마초와 비견되는 전투력을 가진 장비, 위연, 그리고 황충도 함께 참전한 상태였다. 이들은 하후연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오랜 세월을 전투로 보낸 베테랑, 유비의 지휘를 받고 있었고. 유비의 부족한 지모는 법효직(법정)이 보충하는 형태였다.

즉, 하후연은 한중전에서 지금하곤 레벨이 다른 적을 만났다고 봐야지 않나. 뇌서, 한수, 황건적 같은 무리들도 물론 마냥 호구는 아니었으나, 장비나 마초 같은 장군들도 용맹하기로는 적수가 없었거든. 장비는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아냈고, 마초는 조조를 죽음 직전까지 공격했다. 물론 하후연도 혼자서 유비의 대군과 붙은 것이 아니라 장합, 조휴, 조홍, 곽회 같은 명장들과 함께 붙었으며 이들도 상당한 전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하후연을 죽인 사람은 장비도, 마초도 아닌 황충이라는.. 사실 북방에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의 장군이었다.

황충
정사 삼국지에서 촉나라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부족하지만 황충은 그 정도가 심하다. 정사 삼국지는 서진(西晉) 초에 완성됐는데 훗날 남송(南宋)의 학자 배송지가 다양한 문헌을 주석에 추가하여 조운 등 — 기존에는 부실했던 기록들이 상당히 보완됐는데 황충은 배송지의 주석도 없다. 진짜 어지간히도 조용한 삶을 사셨던 모양 =3= 그러나 이런 부족한 기록들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황충의 상관들은 모두 황충이 용맹한 인물이었음은 인정했다.

유표는 황충을 장사에 배치하고 중랑장에 임명하는데 – 중랑장은 장비가 조조에게서 받은 장군직이었고 당시 장사는 유표의 조카 유반이 수비하고 있었는데. 유반은 강동으로 세력 확장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강동에 지역 기반을 둔 손씨는 이런 유반에 대응하고자 태사자를 배치했고. 적과 근접한 국경에 황충을 배치한걸 보면 문사(文士)에 지나지 않았던 유표도 황충의 전투력을 인정한 모양이다. 이후 형주가 조조에게 넘어가자 조조는 황충을 임시 비장군에 임명하는데, 비장군은 요즘으로 치면 소대장으로 적과 직접 격돌하는 역할을 맡는 장군들이 주로 맡았다.

그리고 유비는 황충의 전투력을 유표, 조조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유비가 서촉을 공격할 적에, 처음에는 일부로 관우, 장비, 조운, 제갈공명 등 1군의 제장들은 형주에 두고 비교적 명망이 적은 장군들로 공격진을 구성했다. 그러니 이들은 명망만 적었지 능력 자체는 진짜였는데 여기에 위연과 황충이 배속된다. 황충은 파촉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큰 군공을 세우고 용맹함과 굳셈이 삼군의 으뜸이었다고 하는데.. (비록 후발대였지만) 장비, 조운보다 더 큰 무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황충의 열전은 관우, 장비, 마초, 조운과 함께 묶였는데 조운보다 먼저 소개된다. 비록 조운이 황충보다 더 오랫동안 유비를 섬겼고 황충보다 더 오래 살았어도 무공이나 업적의 측면에서 황충이 조운보다 더 위였다는 뜻이다. 시호도 조운보다 먼저 받았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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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군산 전투로 돌아가서 — 장합의 군대가 유비의 공격에 위태롭자 묘재(하후연)은 자신의 부대를 반이나 분할하여 장합에게 지원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황충이 하후연에게 돌격하면서, 황충의 부대에 배속된 병졸에게 하후연이 참살된 것 같다. 그런데 하후연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군단장이었는데. 적병의 규모나 적장이 누구였는지를 몰랐겠어? 추측하면, 하후연은 자신의 전투력으로는 부대원이 반으로 줄어도 자신이 패하지 않을 거라 여기지 않았을까. 쉽게 말해서, 황충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았다는 말씀 =3=

북방에서 하후연은 관우, 장비, 여포, 공손찬, 마초 등의 맹장들의 활약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20년간 군(軍)을 이끌었으니. 계산에 의하면 황충은 (혹은 유비 휘하의 제장 누구든)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정사 삼국지에선 마초 다음으로 황충을 인정하니, 하후연은 마초를 상대로는 졌으나 그 아래 레벨의 장군을 상대로는 (병력의 반이 줄어도) 이길 수 있으리라 오판했고 결국 패사(敗死)했다.

명망이나 공적을 기준으로, 하후연이 황충을 경계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객관적으로 서로의 경력을 비교하면 누가 봐도 하후연이 황충보다 우위였다. 관우조차도 황충은 노병(老兵)이라 북방에서 활약한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대차게 비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까보니 황충의 전투력은 하후연을 잡기에 충분했다. 명망과 공훈이 그 사람의 실질적인 능력과 완벽하게 매치가 되지 않을수도 있음을 하후연은 경계하지 않았다. 조조가 평소 하후연에게 “때로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라고 했던 조언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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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이 죽자 조조는 하후연을 민후(愍侯)로 추증하고, 하후연의 식읍은 토탈 800호에 그친다. 정욱과 가후의 식읍이 800호였으니 대단한 대접을 받은 것 같으나 — 하후연과 동시대에 활약한 종친 장군들 중 조인이 3500호. 하후돈이 2500호. 조홍이 2100호. 하후상이 1900호를 받았다. 유비도 하후연이 죽자 “대장(조조)를 잡아야지 이건 쓸모가 없다” 라고 혹평했을 정도로.. 하후연이 죽자 위, 촉 모두 “원래 그 친구 별 거 아니었다” 라는 식으로 폄하했다. 아마도 조조는 군(軍)의 사기를 지키고자 (하후연의 명예까지 깎아가면서) 정신승리를 시전했고, 유비도 비슷한 목적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으리라.

그러나, 하후연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진 이후 사서에도 나오는데 — 하후연이 사망했을 적에, 정서장군이었는데 위나라가 망할 때까지 정서장군은 공석이었다. 보통 어떤 신하가 큰 공을 세우면, 그 신하의 명예를 기리고자 그 자리를 비워두는데 (한나라의 상국, 촉나라의 승상도 각기 소하와 제갈공명이 죽자 공석으로 비웠다) 위나라는 하후연의 빈 자리를 그대로 둔 것이다. 하후패가 촉나라로 투항하자 위나라 조정은 하후연의 공적을 봐서 본국에 남은 하후씨를 처벌하지 않았다.

황충은 정군산에서의 활약으로 정서장군에 임명되어, 유비가 한중왕에 취임하자 후장군이 되는데. 이로서 황충은 관우, 장비, 마초, 조운과 동급의 반열에 오른다. 하후연 참살 한방에 관우, 장비와 같은 레벨이 된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황충이 하후연을 참살하지 못했다면 – 어쩌면 정사 삼국지 황충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황충도 끽해야 요화, 진도 정도의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그만큼 하후연은 대단했고 황충도 대단했다.출처:하후연, 황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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