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으로 드러나는 한 사회의 이면 – 아틀란틱

– 페스트를 언급한 부분이 맘에 들어서. 정치색 감안해야 할 듯.
– 나름 존스 홉킨스 민주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인데 과연 이 글의 정치적 해석이 추후 맞아떨어질지?!

이탈리아 볼로냐 – 나는 지금 이탈리아 북부 도시 한가운데 앉아있다. 봉쇄된 롬바르디아 시내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이 순간, 볼로냐에서는 신종 코로나 확진 사례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COVID-19로 알려진 이 병에 걸린 한 두 명은 타지역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내 주변 아무도, 가까운 그 어느 누구도 아픈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초빙강사로 온 여기 미국 대학에서는 별 얘기가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치료약이 없는데 급속히 확산하는 병과 싸워본 사람은 우리 중에 거의 없다. 스페인 독감을 떠올릴 만큼 많은 나이도 아니다. 사람들은 백신이나 임상실험을 통과한 약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방송, 표지판, 이메일에서는 손을 씻으라는, 그다지 충분하지도, 안심 되지도 않는 권고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기관인 볼로냐 대학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축구경기와 컨퍼런스 회의도 취소됐다. 안내를 따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여러 번 역병을 겪어본 중세의 거리–1348년 흑사병으로 도시 인구의 반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상하리만치 텅 비었다. 동료 중 반은 이런 조치가 지나치게 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반은 조치가 충분치 않다고 불안해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질병의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일부 이유가 있다. “역병이란 인간의 체계를 갖추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실감이 안 난다고, 언젠간 끝날 악몽이라고 서로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또한 지금 상황에도 꽤 잘 부합한다. 많은 이들이 눈에 안 보이는 무엇 때문에 일정까지 바꾸려 들지 않는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일종의 풍자로, 사실은 프랑스의 점령이나 인간 조건을 다룬 책으로 종종 읽힌다. 하지만 전염병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에도 아주 좋은 책이다. 책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온갖 인간 행동이 열거되어 있다.

<페스트>의 내용 중, 봉쇄된 도시에서는 “여행일정을 잡거나 의견을 주장하는 등 일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래를 부정하고 여행과 토론도 못하게 만드는 전염병을 왜 굳이 생각해야 하는가?”가 있다. 이 대목의 현대 밀라노 판인 #Milanononsiferma—“밀라노는 멈추지 않는다”—해시태그 캠페인이 이미 시작됐다. 나머지 도시도 뒤따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정부 대책을 불필요한 권고라고 일축하는 이탈리아 업체 사장과 호텔 매니저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하지만 비가시성은 불확실성을 낳고, 불확실성은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무도 쉽게 악용된다. 예를 들어 <페스트>의 등장인물 중엔 전염병을 기회로 신도 수를 늘리려는 신부가 있다. 그는 전염병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는 신의 벌이라고 신도들에게 설교한다. 현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생한 불안감을 제일 먼저 악용하는 사람은 극우파 수장 마테오 살비니이다. 그는 정부의 즉각적인 국경 봉쇄, 모든 집회의 중단, 시민들은 집에 머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살비니는 쓸데없이 문제를 키웠다. 그의 주장이 없었다면 즉각적인 반발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에 처음 나타났는데 그 지역은 북부 연맹의 세력이 제일 강한 곳이었다. 국경 봉쇄가 그 지역 경제를 최악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살비니는 다른 쪽으로 말을 바꿨다. 그는 정부가 아프리카 난민으로부터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난민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외지인, 불결함, 질병을 하나로 뭉뚱그려 보는 인식은 매우 오래됐다. 프랑스 극우파 수장 마린 르 펜 또한 프랑스 정부에 프랑스-이탈리아 간 국경 봉쇄를 요청했는데 이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 프랑스의 초기 감염 사례들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며칠 뒤 런던에 가야해서 영국 우파 타블로이드지를 꼼꼼히 읽으며 히스테리 정도를 살피고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잠잠했기에 — 보리스 존슨 총리와 임신한 여자친구의 약혼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항공편은 계속 있을 것이다. 보수 언론들이 일단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이탈리아와의 일체의 접촉 차단을 주장할 것임이 분명하며 보수 언론의 입장을 중시하는 영국 정부는 이를 신중히 참고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악하다는 건 아니다. 소설에 흔히 나오는 영웅과는 다르지만, 카뮈의 소설에서도 영웅은 있다. 그들은 의사, 의사를 돕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기록하고 측정하고 일어난 일을 추적하면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공무원인 그랑 씨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음 속 선한 마음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높은 이상을 가진 것 외에는 딱히 추천할 점이 없는, 이 소박하고 겸손한 영웅. 이 사람이야말로 정확한 진실, 즉 2 더하기 2는 4와 같은 진실을 건네줄 것이다.” 그랑과 의사 리우, 여타 몇 명의 무리는 과학, 투명성, 정확성을 토대로 질병을 파악하고 억제하기 위해, 히스테리나 좌절감 조장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좀 괴상한 생각이긴 하지만 역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똑같이 영웅이다. 과학자나 공중보건 연구원들은 즉시 수치와 사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즉시 백신 연구에 착수했다. 중국 우한에서처럼 봉쇄 지역에 잔류하기로 결단을 내린 이탈리아 간호사와 의사들도 많다. 그들의 판단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과 전염병 확산의 둔화라는 1차 목표를 함께 고려해야 되는 이 상황에서 격리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사안의 정오를 명확히 판가름하는 방법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질병의 악영향에 대한 예상치를 다르게 낸 바이러스 전문가들 사이에 공개 논쟁이 오가곤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닥칠 몇 주간의 요령을 알려주겠다. 정치인을 판단할 때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명확히 결정권을 쥐어 주는지를 볼 것. 사람들이 바라는 건 정확한 정보이지 정치색에 물든 정보가 아니다. 그리고 많을수록 좋다. 4년 간 이어진 청문회 끝에 영국 정치인의 입에서 “이제 전문가들은 충분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때 비로소 전문가의 가치가 뚜렷해진다. 사실관계가 갑자기 중요해지는 것이다.

재난과 마찬가지로, 전염병도 사회 이면의 실상을 드러내준다. 중국은 비밀주의 체제, 명령하달식의 관료적 문화로 인해 초반에 질병을 감추는 바람에 벌써 큰 대가를 치렀다. 대조적으로 이탈리아가 살비니와 그의 왜곡된 정보 선동에도 불안이 더 높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의료체계 및 이를 둘러싼 더 큰 범주의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수천 명을 대상으로 바이러스를 검사했는데(물론 검사비는 무료다) 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수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사람들도 이를 알고 서로 거듭 말한다. 가끔은 농담하기도 하지만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참 속일 줄을 몰라”) 이는 긍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검사를 시행한 나라는 유럽에 아직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국은 이 비슷한 대처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미국 의료체계, 나아가 미국 사회체제가 신뢰 구축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두렵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최신 의료 기술 체계, 최고의 의사와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신뢰감을 주는 공중보건 문화 같은 것은 없다. 병원은 이미 더 내려갈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예산을 삭감했다. 여유분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격리 당하면 이들은 도망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미국 정부는 음모론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를 ‘사기’라고 말했고 미신적 믿음을 여러가지로 보여줬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사라질 겁니다. 언젠가는—마치 기적처럼—없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계속 나빠지다가도 언젠간 좋아지잖아요”,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만약 사람들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그 기만과 미신적 사고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는 사망자 수, 질병의 확산, 격리와 권고를 무시한 사람들의 숫자로 측정될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전염병은 아니지만, 지금의 신종코로나 대응도 추후 일종의 시범훈련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기에, 지금 상황에서 이런저런 면을 배우게 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요즘 산불이 치명적인 이유는 원래 산불이 나던 지역에 사람들이 더 가깝게, 더 많이 살게 됐기 때문이다. 많은 신종 질병들은 인류의 거주지가 지구 방방곡곡 확장된 결과다. 사스, 에볼라, 코로나 19는 동물 영역에서 인간 영역으로 넘어온 질병이며 기차, 자동차, 비행기, 공공장소의 인구 밀집을 통해 빠르게 퍼진다.

데이비드 콰먼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Spillover)>에서 이렇게 썼다. 이 질병들은 “다윈의 오랜 진리(그의 말한 진리 중 가장 어둡고, 잘 알려져 있지만, 끊임없이 잊혀지는)를 떠올리게 한다. 인류는 동물의 일종으로 종의 기원에서 혈통, 질병과 건강 면에서 다른 동물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 이런 바이러스들이 사그라들고 눈앞에 안보인다 해도 굳이 없어질 필요까지는 없다. 사라진 바이러스들은 돌연변이를 통해 다른 동물에 둥지를 틀고 재창궐할 것이다.

이 또한 카뮈의 <페스트>에서 리우 의사가 예측한 바다. 리우 의사는 “이 전염병 박테리아는 결고 죽지도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을 것인데, 가구 또는 면으로 된 보석함에 몇 년이고 동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침실, 지하실, 가방, 책장 선반에서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인간이 골칫거리로 삼든 계몽의 기회로 삼든, 박테리아는 쥐떼를 불러일으켜 행복이 가득한 도시로 돌격해 죽어버리게 만들 것이다.

이번엔 운이 좋을 수 있겠지만, 이 기회를 통해 의학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비를 해야 한다. 다음에 올 역병, 또 그 다음에 올 역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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