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재밌었던 추억인데 막상 얘기로 꺼내면 지루하다 – 사이컬러지 투데이

2017년 5월 17일 Gus Cooney 
TV 시트콤 <빅뱅이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중 하나인 하워드가 국제우주정거장에 가서 NASA 우주비행사들하고 놀고 무중력도 경험하고 대우주에 대해 사색하다 돌아온다. 친구들은 그동안 지구에 그냥 있었다. 이 특이한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고픈  하워드가 집으로 오면서 얼마나 들떠있었을까. 
집에 와보니 친구들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파이 먹기 대회를 하고 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하워드가 외친다. “나 우주 갔다 왔다!”
친구들은 고개를 들어 흘끗 보더니 일제히 다시 고개를 파이에 처박고 먹기 시작한다.
이후 시간 동안 하워드는 친구들에게 우주정거장 이야기를 해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태양표면 얘기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평범한 지구별 주제를 더 재미있어 한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하워드 이야기였지만 우리 모두 하워드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도 종종 신박한 이야기에 듣는 사람이 감탄하기를 바란다. 지루한 눈빛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공통 주제로 화제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음은 우리가 <사이컬러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가설이다. 
우리는 학부생들에게 4명 1조로 연구실을 방문해달라고 했다. 간단한 실험이었다. 참여자들은 영상을 보고 난 뒤 5분간 대화를 나눈다. 단, 4명 중 3명을 무작위 선정해서 이 3명은 “평범한” 영상(저예산 단편 애니메이션 등)을 보고, 남은 1명은 “신기한” 영상(조회 수 급증한 기막힌 마술 영상 등)을 본다. 대화를 나누기 전 참여자들이 예상한 바가 핵심이다. 만일 평범한 또는 신기한 영상을 보고난 후 대화를 나눈다면 어느 쪽 사람이 더 즐거울까? 그 뒤 참가자들의 예상을 실제 설문 결과와 비교했다. 당연하게도 참여자들은 신기한 영상을 보고 났을 때가 대화할 때 더 즐거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기한 영상을 본 참가자들이 관람 후 이어진 대화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덜’ 즐거웠다. 소외감 때문이었다. 
특별한 경험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언뜻 모순같다. 벨루가 캐비어에 빈티지 샴페인이 근사한 것이 아니면 도대체 뭔가? 정확히 말하면 경험은 멋지다. 단, 특별한 경험은 “그 순간에” 멋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그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근사하지 않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특별한 경험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고, 따라서 함께 어울리기 어려워지고, 그렇기에 행복감은 줄어든다.
왜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할까?
시기심일 수도 있다. 열대 섬 투어를 해본 적이 없는 내 앞에서 누가 정말 환상적이라고 말한다면 조금 씁쓸할 것이다. 하지만 시기심뿐이라면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타인의 신기한 경험이 진심으로 궁금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신기한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려고” 애쓸 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최근 한 카페에 갔을 때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한 중년 남자가(외모가 해적 비슷) 최근 휴가를 갔다와서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카탄 반도에 가셨어요?” 여자가 물었다. “정말 대박이었어요.” 남자가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대며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동굴 다이빙도 갔었어요. 엄청 깜깜하더라구요.” “힘들었겠어요.” 이 순간 해적아저씨는 상대에게 동굴 다이빙을 좀 더 잘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됐다. “일단 동굴 지형에 들어가면요, 그 세노떼에서요, 부력 때문에 지층을 훼손하지 않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여자 얼굴에 잠시 아리송한 표정이 스쳤다. 몇 분이 지나며 여자의 호기심은 지루함으로 변했고,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만이 정신을 붙들어 매주었다. 이 짧은 일화를 통해 사람들이 대화할 때 불충분한 설명과 과도한 설명이라는 양쪽의 함정을  얼마나 쉽게 번갈아 빠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나의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상대는 경험이 없어 잘 못 알아듣기 때문에 대화의 난이도가 증폭된다.
그렇다고 특별한 경험을 피하거나 말하기를 삼갈 필요까지는 없다. 핵심은 그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안전장치 없이 기계를 가동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대화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상대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소재를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치러야 할 대가는 막대하다. 대화를 하나씩 분류해보기 시작하면(또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기 시작하면) 일상을 주제로 할 때 대화가 놀라울 만큼 생생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귀한 경험에 바탕한 대화는 짧게 마무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외계에서의 셀카로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는 쌓을 수 있지만 대화 주제로는 형편없다. 실수는 특별한 경험을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마치 몰디브의 따스한 바닷물처럼, 특별한 경험이 오면 거기 서서 흠뻑 적신 뒤 지나가게 두는 것으로 족하다. 그에 비해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까다로운 일이며, 실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말이 나오기도 한다. 대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나와 상대의 공통분모에서 꽃을 피운다.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순간, 혼자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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